1부, 쥬라기 동북아시아 에우헬로푸스류의 이동 Dinosaur

1부, 쥬라기 동북아시아 에우헬로푸스류의 이동

-초식공룡이라 불리던 용각류의 먹는 자세-

Cranial anatomy of Shunosaurus and Camarasaurus. May, 1996. 사실 이 내용은 “용각류가 육식하는 공룡의 이빨이었나?, 아니면 초식하는 공룡이었나?” 해부학으로 살펴본 종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용각류에 이빨은 초식공룡의 이빨과 전혀 달랐기 때문에 이들의 이빨이 어떻게 초식공룡의 이빨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보는 논문이었습니다. 용각류의 이빨은 날카로운 창 모양으로 되어있지요. 디플로도쿠스는 앞에만 이빨이 있었지만,


<그림8. 디플로도쿠스의 이빨>

동북아시아의 No-Homalrosauropoda에 속하는 에유헬로푸스는 다음과 같은 그림의 이빨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빨은 매우 보편적인 일상적인 물고기를 먹는 이빨에 속했습니다.


<그림9. 에우헬로푸스의 이빨 No-Homalrosauropoda 논문 중에서 A는 안쪽으로 이빨로 훼손없는 고른 이빨을 갖고 있으며, B는 이빨의 앞부분으로 가장앞부분보다 긴 송곳니와 같은 이빨 다음으로 이빨의 훼손이 심함.>

결국 앞니 만 가졌던 호말로사우로포다(Homalrosauropoda)의 이빨을 가진 것은 디플로도쿠스와 같은 공룡이었고, 어금니까지 고르게 창과 같은 이빨을 가진 것은 아니다-호말로사우로포다로(No-Homalrosauropoda)정의 했던 것입니다.

Homalrosauropoda 는 호말로케팔루스에 근간이 되었던 백악기 초식공룡의 발전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앞니를 가진 초식공룡에 그 뿌리를 두고 시작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부리를 가지고 앞니를 가진 공룡 호말로사우로포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앞으로 약 200페이지 원고가 끝나는 맨 마지막에 놓여 있어서, 마지막 또 다른 초식공룡의 삭제요인으로 헤테로돈토를 닮은 아길리사우루스-로더벡키의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참: 알을 품는 조반목에 대한 논문>

이 논문의 중심은 용각류 이빨의 사용에 있었고, 여기서 창과 같은 긴 이빨사이로 나뭇잎을 훑어 먹다. 란 의견은 사라지고, 새로운 제시안은 이들이 날카로운 이빨은 매우 정확하게 자르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디플로도쿠스와 같이 턱이 전혀 발전하지 않았던 용각류는 낮은 곳에서 먹이를 먹었고, 반면에 에우헬로푸스로부터 카마라사우루스까지는 높은 곳에서 이빨을 들었을 때, 자르는 자세를 설명했으며, 이로써 낮은 풀을 먹는 디플로도쿠스와 높은 곳의 나뭇잎을 먹는 에우헬로푸스로 정했지요.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공룡이 가진 총체적인 판단이 되지 않았습니다.

호말로사우로포다에 대한 전제 자체가 유사성이 불완전한 것이고, 낮은 곳에서 먹이를 구했던 용각류는 바닥에 연체동물을 주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했고, 먹이를 먹을 때 물이고이지 않을 정도의 낮고 가냘픈 턱은 단지 잘라서 삼키는 행동 이외 필요하지 않았고, 높은 곳에서 먹이를 먹는 공룡은 먹이를 삼키기 위해서 물고기를 물어 올리고 잘라 먹었을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습니다.

이 두 방식 모두 먹이를 먹는 순간에 물이 입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행동에 속하는 것입니다. 결국 정의를 하는 시작으로부터 다양성이 고려되지 않았고, 쥬라기에 아길리사우루스-로더벡키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준비된 논문입니다. 서양에 살았던 일부의 박치기공룡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된 결론이었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디플로도쿠스의 가장 특별한 이빨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빨이 자르는 각이 서로 교차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르는 순간 미끄러지지 않는 특별한 성격이 있음에도 고려되지 않았고, 이들 용각류의 이빨의 전반적으로 훼손되는 이빨의 위치는 즉 자주 사용되는 이빨의 위치는 중심에서 벗어난 앞니의 양쪽 부분도 고려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룡이 정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초식공룡에게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 외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이들이 먹이를 먹을 때 시각이 어떻게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는데, 단지 연한 잎을 선택하여 먹었다는 가정이었는데, 그렇게 하기위해서 눈의 가까운 거리에 초점에 대한 의견이 있어야 했습니다.

우선 동북아시아의 에우헬로푸스로부터 카마라사우루스는 양안이 아닌 옆을 보는 눈이고, 디플로도쿠스의 넓고 두툼한 주둥이와 두개골의 폭도 양안을 보는 거리는 입 앞이 아닌 적어도 원거리로 나가야 초점이 모였거나, 눈이 전방으로 놓이지 않았기 때문에 양안도 아니었습니다.<참조: 양안을 가진 동물은 두개골에서 뚜렷하게 후두가 넓어진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쥬라기에 초식공룡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양안을 가진 공룡은 없었지만, 백악기초기에 안킬로사우루스와 같은 공룡은 양안을 갖고 나란한 어금니를 갖고 있어서 초식공룡이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정면에 자신이 먹는 솔방울이나, 구과식물의 껍질을 벗기는 행위 등은 정면을 보는 행동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쥬라기에 대다수 공룡은 양안을 가진 공룡은 없었지만, 유일하게 오리주둥이 공룡 등으로 발전하는 힙실로포돈인 안두사우루스와 같은 공룡은 유일하게 양안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백악기 거대한 해안의 주인으로 성장한 오리주둥이 공룡은 긴 꼬리를 가진 18미터에 키가 7미터를 넘는 거구로 성장했고, 당당하게 해안에서 살았던 공룡이었습니다. 과거에 초식으로 성장했을지 고려해 봐야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이구아노돈으로부터 발전한 초원에서 살았던 볕을 가진 공룡과 성격이 달랐습니다.

실지 이 주첸고사우루스는 늘어놓은 골반의 총길이는 24미터에 이릅니다. 용각류와 같은 자세라면 몸의 길이는 더 길게 이야기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남해에서 오리주둥이 공룡의 이빨이 복족류 화석에서 나온 점은 이들이 혹시나 복족류를 먹지 않았을까? 더욱이 한반도에 해남 우항리에 발자국은 물갈퀴를 가진 이족보행으로 당연히 누구인지 몰라도 긴 꼬리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의심덩어리인 이 공룡에 대하여 간수지방(Gansu Province)의 슈유롱(Xuwulong)이란 초기백악기 하드로사우루스로 발전하는 단계를 중국의 과학자 동지민교수는 제안하고 있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오리주둥이 공룡이 아닌 이구아노돈의 하드로사우루스 발전으로 이 공룡으로부터 볕을 가진 하드로사우루스의 발전을 구분하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이 같은 오리주둥이 공룡과 용각류의 알은 남해 해안의 끝자락에 알을 낳았습니다. 그것은 쥬라기가 아닌 백악기에도 자신들의 과거의 습성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남해는 호수라고 하지만, 이 남해는 해안에 가까운 범람원의 배후습지가 가진 발전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식하는 종의 다양성과 생태적으로 매우 다양한 공룡의 모습을 만날 수 있으며, 남해의 전반적인 위치적인 성향은 바다를 낀 해안입니다. 이번 이야기에 담을 내용이 아니기에 일단은 내용을 접겠습니다.


-양쯔 강은 과거에 바닷물이 흘렀던 곳으로-

과연 “쥬라기 양쯔 강에 살았던 에우헬로푸스들이 어디에 살았을까?” 그리고 “이들이 알을 낳았던 곳은 어디였을까?”하는 것입니다.

이 첫 그림은 양쯔 강이란 모습과 과거 해양에 대한 설명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용각류의 화석이 해안에 남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곳은 담수가 채워져 있었지, 바닷물이 채워진 곳은 없었지요. 그리고 강으로 들어간 범람원 주변은 늘 숲으로 우거진 곳에서 발견되었고, 심지어 백악기에는 고비사막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이와 같은 내용도 차후로 논하겠지만, 우선 동북아시아의 중심이 되었던, 에우헬로푸스에 대한 분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쥬라기 해양의 거대한 섬으로 이루어진 동북아시아는 중국의 지괴를 크게 나눠서, 북쪽 대륙과 남쪽대륙으로 나눠지고, 이 북쪽의 지괴는 남해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기준에 양쯔 강이 놓여있었고, 양쯔 강은 많은 해양의 파충류와 초기 퀴안이수쿠스와 같은 아르코사우루스와 해양으로 들어간 노토사우루스와 익크티오사우루스(Ichthyosaurus)와 같은 해양파충류와 바다악어와 암모나이트, 밸램나이트와 바다악어 그 밖의 많은 해양 동식물이 서식했던 곳입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동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안에 살았던 연체동물과 갑각류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흔적은 과거 이곳 양쯔 강이 과거바다였을 것이란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제시를 하게 될 북아메리카의 용각류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는데, 또는 한반도로 이어진 해안의 공룡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양쯔 강으로부터 우리는 쥬라기에 거의 모든 거대한 공룡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림1. 양쯔 강의 지류와 초기 용각류의 분포/ 중국논문자료 편집 본>

양쯔 강과 지류의 발전은 과거 동북아시아 대륙의 북쪽과 남쪽의 두 대륙을 나누는 서로 다른 지괴에 결합으로 연결되었고, 과거에는 매우 넓은 공간에서 해수가 들어오는 바다였던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며, 정말 바다부터 매우 가까운 강이나, 해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유헬로푸스의 분포를 위의그림에서 찾아보면, 용각류가 살았던 곳은 중국 북과 남의 지괴에 흐르는 양쯔 강이라고 불리던 과거바다를 건너다니며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그림2. A, 쥬라기의 바다였던 곳 B, 내륙의 소금산지 C, 염분이 심한 지역의 분포>

이 그림은 중국의 염분의 분포를 제시한 지도로 진한주황의 지역으로부터 세계최대의 내륙의 소금산지가 있으며, 북쪽으로 대다수 과거 바다였던 자리였음을 말해주는 지도입니다. 물론 쥬라기에 많은 공룡이 발견된 쓰촨 성도 양쯔 강의 주변으로 공룡의 화석이 발견된 지역에 소금동굴로 유명했던 곳이었습니다.

-다센푸의 특별한 이야기-

특히 쥬라기 양쯔 강은 벗어나 강으로 옮긴 다센푸 지역에 살았던 공룡에 대하여 “우리는 약 1천만년동안 살았던 이들의 생활방식을 통해서 과연 초식공룡이었을까?”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림3. 다센푸의 공룡>

다센푸는 실지 양쯔 강으로부터 가장 멀리 들어간 지류로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범람원입니다. 쥬라기의 곤드와나와 로렌시아의 해양변화에 가장 보호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었고 쥬라기의 다른 지역보다 오랜 시간을 가졌으나, 오히려 이곳은 해안이 없어지자 용각류도 사라진 곳이었습니다. 용각류의 삶에서 해안은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었습니다.

다센푸 지역의 초기 용각류는 한 지역에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양쯔 강 용각류의 고향 다센푸는 총 길이 약 30Km²공간으로 논산평야와 유사한 면적을 차지한 공간에서, 거대 용각류로부터 스테고사우루스, 육식공룡과 함께 이들 쥐라기 공룡들은 백악기까지 약 1억만년 동안 이곳에서 함께 살아간 것입니다.

<초기 발견 시 11종 이었으나, 지속적으로 더 많은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음.>

이 용각류가 20미터를 기준으로 몸무게는 각각으로 약 25톤 정도이며, 한해에 먹는 식물의 량은 몸무게와 비례합니다. 이것은 20마리의 용각류가 서식했다면 각각 용각류가 하루에 250kg을 먹었다면, 20마리*250*365일=91,250kg으로 다센푸와 유사한 공간을 가진 논산평야에서 만든 2009쌀이 일 년간 42톤을 2배를 넘어서, 쌀과 볏단을 모두 먹어치운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다센푸에 완전하게 곡식으로 채운 상태를 두 배로 쌓아놓은 양입니다. 11종에 아기를 낳기 위해서, 최소의 부모만 계산해도 이정도인데, 상식으로 초식을 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겠지요. 그러나 용각류를 발견했던 지역마다 붙어진 수식어가 있습니다. 주변은 숲이 우거진 흔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공룡이 알을 낳았거나 보호해야했던 숲은 온전하게 남겨져야 했던 것입니다.

실지 용각류는 성장한 공룡만큼이나 많이 먹는 것은 성장하는 아기공룡입니다.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어야 했지요. 서로 다른 공룡의 식사방법으로 어미가 높은 곳에 잎을 먹는 공룡이 혹은 낮은 곳에 잎을 먹는 공룡으로 구분시켜서 “이들에게 먹이를 줘야 했을까요?” 그런데 이들은 “왜 해안이나 강에 가까운 곳에서 먹이를 구하지 않았을까요?” 굳이 “해수가 넘치는 배후습지나 범람원에서 먹이를 찾고, 알을 낳았을까요?”


< 공식적으로 : 윈난, 스촨 지방에서 아길리사우루스, 슈노사우루스(Shunosaurus), 후양고사우루스(Huayangosaurus), 슈안노사우루스(Xuanhanosaurus) 등은 쥬라기 중기의 샤지미아 지층(Shaximiao Formation, 1억6천1백만 년 전)에서 발견되어 중국 쯔공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쥬라기의 화석은 약 8000석에 이른 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용각류나 오리주둥이 공룡은 호수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배후습지의 주변 숲에서 알을 낳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이해하겠지만, 거대한 용각류는 알을 품을 수 없었고, 그들의 알을 낳기 위한 숲을 먹어치우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공룡에게는 알을 낳고 그리고 부화되는 것에 대한 세대를 남기는 유전으로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 생물은 목숨을 바쳐 지켜나가는 것인데, 이러한 중대한 알을 낳는 행위에 대해 그 어떤 사고도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 해안에서 거주하던 이들에게 무엇을 먹이로 선택해야 할까요? 그것은 이들이 해안과 강의 범람원으로 이어진 삶의 터전에 가장 빠르게 성장했던 것을 섭취해야 했을 것이며, 또한 오랜 기간 그들은 충분한 먹이양의 흔적이 남아야했고, 용각류가 먹고살았기 때문에 제한적인 성장을 가져야 했던 생물일 것입니다.

그와 함께 쥬라기 말기 북극해의 오염과 대서양의 형성으로 지구북반구는 지구남반구와 다르게 좀 늦은 해양의 오염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다루게 될 내용이지만, 한반도남해와 중국산동의 주첸에 공룡의 알을 잠시 이야기하면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용각류의 숫자에서 남해의 알이 많았던 반면에 주첸은 용각류의 숫자가 매우 줄어듭니다. 내륙으로 이어질수록 범람원의 크기가 달라지고 배후습지의 크기가 달라졌겠지요. 중국의 주첸 역시 범람원이었고 한반도와 같은 오리주둥이 공룡의 알과 화석 그리고 용각류의 알과 발자국화석이 남겨진 곳입니다.


<그림5. 주첸의 범람원의 흔적-그림: ‘중국정부승인자료’가 있는 곳은 링크를 하지 말아주세요.백악기초기로 부터 말기까지 범람원의 퇴적층으로 주첸의 공식적인 7600화석의 중심지>

-해안과 이어진 북아메리카의 용각류-

반면 북아메리카에서 이야기한 용각류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북아메리카의 용각류는 로키산맥의 남동쪽에 몰려 있었고, 이들은 대서양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해안으로부터 육상으로 먹이를 얻어야 했습니다. 과거 이들이 양치류 숲을 찾아 떠나고 물을 찾아서 호수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또다시 호수를 찾아 떠나게 되었고, 이들이 사라지는 시기에는 더욱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됩니다.


<그림6. 북아메리카의 백악기지도>

북아메리카의 용각류의 숫자는 동북아시아에 10/1도 되지 않습니다. 드넓은 양치류 숲이 우거지고 나무는 동북아시아보다 뛰어난 식생을 갖고 있었습니다. 과연 “건조해진 기후로 물이 없어져서 더 많은 거리를 이동했을까요?” 그렇게 빠르게 없어지는 것은 물이 아닌 연체동물과 같은 것을 먹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연체동물은 과거 트라이아스기에 초기 해양의 파충류가 두족류를 먹었듯이 초기 용각류도 강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복족류를 먹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참고 2부, 쥬라기 수각류의 변화: 복족류의 성장과 변화를 통해 먹는 이유를 담고 있습니다.>

이 복족류의 발전에 대한 기록을 보면 우선 가장 많은 쥬라기에 쌓여있는 층을 발견하고, 중생대기간동안 성장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공룡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생대에 그 숫자는 무려 수십 배가 넘는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림7. 무척추동물의 성장도표>

쥬라기에 이들은 해양으로 벗어나 육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 발전 속도는 다른 생물에 의한 제한적인 무척추동물의 전반성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도표입니다.


-용각류의 먹이와 두개골의 이해-

우선 용각류의 신체에서 앞발의 발톱은 길고 가느다란 발톱을 가졌고, 특히 슈노사우루스와 같은 초기 에유헬로푸스는 첫 번째 발가락에 갈고리와 같은 발톱을 갖고 있습니다. 모래땅을 파기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갯벌이나 범람원에서 연체동물을 먹기 더없이 좋은 도구를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디플로도쿠스의 이빨은 아무것도 씹을 수 없고, 삼켜버리거나 무엇인 가를 부수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정도였고, 이빨이 미끄러운 복족류와 같이 매끄러운 껍질이 움직이지 않도록 잡을 수 있었으며, 매우 낮은 턱은 낮은 호수 밑에 먹이를 잡았어도 목을 올리는 과정에 물이 고이지 않았습니다. <생략된 내용>


아직은 이들 용각류가 해안의 주변이나 강의 범람원의 살았던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단지 이들이 어디서 살았고 어떤 지역에 모습을 보인 전반적인 인식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는 이들이 왜 해안에 살았고, 어떤 것을 먹지 않으면 살수 없었거나, 어린 용각류가 성장을 위한 조건이나. 어떤 신체적인 특징이 생태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이야기 할 것이며, 이빨에 대한 추가 내용으로부터 오염으로 인한 공룡의 행동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하게 될 것입니다. 생태적인 내용의 일부를 이해하기 위해 2부 쥬라기 수각류의 변화를 함께 진행합니다.

2011.11.6.


덧글

  • 공룡알 2011/11/08 19:37 # 삭제 답글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견해입니다. 다만 반박할 여지가 많은 견해인것 같네요. 일단 생각나는 것만 짧게짧게 언급하겠습니다.

    1. http://palaeozoologist.deviantart.com/art/Freaky-Euhelopus-207994592 에서 볼 수 있듯이 에우헬로푸스의 체형은 상체 높이가 하체를 압도하는데, 물고기를 먹는 동물의 형태라고 납득하기 힘듭니다. 물고기 한마리를 잘라먹기 위해서 수 미터에 달하는 목을 숙였다 들었다 했다면 이는 심각한 에너지 낭비입니다.

    2. 디플로도쿠스의 이빨이 살아있었을 당시 에나멜질의 칼날로 덮인 것이 아니라면, 잘해봐야 분필 수준으로 뭉텅한 이빨로 무언가를 자를 수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3. 카마라사우루스의 예에서도 보이듯이 대형 용각류 공룡은 군집 이동생활을 했다는 물증이 있습니다. 용각류의 삶은 다센푸와 같은 좁은 지역에 머무르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 나무 2011/11/09 12:32 #

    새로 마련한 에우헬로푸스의 해석은 최초에우헬로푸스가 그 답안이 아닙니다. 유안모사우루스가 에우헬로푸스의 시작이지요. 이 유안모사우루스는 오메이오사우루스와 마멘치사우루스의 중간을 가진 공룡이고 마멘치사우루스류가 에우헬로푸스 입니다.^^ 참고 내용 올려드리지요.
    지금 지적은 서양인이 잘못 만든 지적에 속합니다. 용각류의 이빨은 분필도 아니고 날카로운 창과 같다고하여 Peg tooht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그림이 아래인지 윗니인지 말하지 않았지요.^^ 맞춰보시고
  • 공룡알 2011/11/08 19:48 # 삭제 답글

    4. 에우헬로푸스의 화석이 발견된 Mengyin 층의 Ningjiagou 는 백악기의 지층이며, 전형적인 terrestrial indet. 입니다.
  • 나무 2011/11/09 12:46 # 답글

    그리고 아직 증명의 1/10도 하지 않았네요. 좀더 인내하시고 읽어 보시고 궁금한것 무엇이든 동북아시아에 대한 답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트로오돈 2011/11/09 15:04 # 삭제 답글

    윗니인지 아랫니인지 따지는건 의미가 없는일이죠. 척추동물에서는 윗니와 아랫니 형태가 같아야 먹이섭취가 용이하니 말이죠... 그리고 서양인이 잘못 만든 지적은 도대체 무슨 소리죠? 고생물 연구를 무슨 서양인만 하는거라고 믿으시는 모양인데 동양권에도 꽤 유명한 고생물학자들 많습니다. 그리고 학설은 언제든지 바뀌는 거니 잘못된 지적이란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물론 용각류가 초식성이란건 여러가지 증거를 통해 이미 정설이 된거고요
  • 나무 2011/11/09 17:27 #

    아마도 여러가지란 모든 내용을 하나씩 모두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찾는 것이 생각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지요. 외우는 것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마음에 문을 열고 생각하시면 더 좋은 세상이 보입니다.
  • 공룡알 2011/11/09 18:54 # 삭제 답글

    그러고보니 이미 오래전에 디플로도쿠스가 조개 등을 먹었다는 학설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학설이 폐기된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식생으로는 도저히 최소 15톤이 넘는 덩치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룡의 식성을 생물 외적인 생태요인을 통해 밝혀내고자 하는 의도는 좋았지만, 생물 외적인 요인 - 지형 - 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생물 내적인 요인을 싸그리 무시한 듯하군요.
  • 나무 2011/11/10 10:14 #

    천천히 보세요 거짓은 없는 내용 이니까요
  • venator 2011/11/12 10:54 # 삭제 답글

    용각류의 먹이량은 많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용각류이 이동했다는 설을 만들었고 최근에 입증되었습니다.
  • 나무 2011/11/12 15:50 #

    월요일 올라가는 내용에 또 다른 의견으로 이동에 대한 반론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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